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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높은 커피의 제국 스타벅스

나는 손오공이다 2023. 4. 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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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의 음료

    미국의 커피 애호가라면 늘 꿈꿔오던 것이 있었다. 바로 하얀 대리석이 반짝이는 커피 하우스에 앉아 하얗게 코팅된 커피메이커에서 갓 뽑아낸 뜨거운 로버스터 커피를 음미하는 것이다. 마치 마법으로 꾸민 것 같은 이런 광경은 카페 라떼나 에스프레소 마치아토, 카페 모카, 에스프레소 콘 판나 같은 매혹적인 이름과 근사하게 어울릴 것이다. 커피 애호가들의 꿈 속에서라면 싸구려 원두커피 한잔마저도 숨겨진 원두의 마력을 뿜어낼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이런 꿈이란 게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하워드 슐츠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이태리의 밀라노에서 거리 곳곳에 널린 에스프레소 바를 본 뒤로, 미국에도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1985년에 시애틀에다 일 지오르날레라는 커피숍을 열어보였다.

    그러면 슐츠는 어디서 그렇게 좋은 원두를 구했을까? 전에 그가일했던 북서부의 원두 판매업체 '스타벅스'였다.

    고귀한 탄생, 스타벅스

    미국에 사는 네덜란드인 알프레드 피트는 고향에서 구입했던 커피원두가 잊혀지지 않았다. 잘 볶은데다가 품질도 탁월한 아라비카 원두였다. 그는 1966년,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에다 '피트의 커피' 라는커피숍을 열어 미국에서는 이름도 못 들어본 진기한 커피를 소개했다. 몇 년 안돼서 피트의 커피숍은 태평양 연안에 사는 커피 중독자들의 메카가 되었다.

    1972년, 제브 시글은 피트에게 커피 만드는 지혜를 청해 듣고자 시애틀로 순례를 떠났다. 그는, 잡지 기고가인 고든 바우커와 학교 선생님인 제리 볼드윈과 함께 시애틀에 커피숍을 열 생각으로 1만1천달러를 모았다. 동업자들은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커피를 사랑하는 일등 항해사의 이름을 따서 커피숍 이름을 스타벅스로 정했다.상호에서 풍기는 항해의 분위기는 회사 로고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로고에는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한다는 요정 사이렌이 포함되었다.

    처음 9개월 동안은 피트의 커피숍에서 원두를 사다가 손님들에게무료로 커피를 대접했다. 그 다음부터는 그들이 직접 원두를 볶았다. 처음으로 회사의 원두를 볶은 사람은 볼드윈이었다. 1982년까지 스타벅스는 워싱턴 주에 5개의 커피숍을 열었고 원두를 볶아서 레스토랑에도 팔았다. 그들은 알프레드 피트가 제시한 원칙을 철저히 준수했다. 때문에 볶은 지 2주가 지난 원두를 쓰면 커피 맛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는 유통 기간이 지난 커피 원두는 자선 단체에 보내주었다.

    배보다 커져버린 배꼽

    첫 번째 매장을 열고 10년이 지난 1982년, 회사는 뉴욕 출신인 하워드 슐츠를 영입하여 사업 확장을 기획하도록 했다. 슐츠는 원래스웨덴의 가정용품 회사인 함마르플라스트의 부회장으로 일했었다.그런데 시애틀에 여행을 왔다가 스타벅스와 미국 북서부의 정결한"삶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3년 후인 1985년, 슐츠는 원두 구매를 위해 이태리에 갔다. 그런데밀라노 거리 곳곳에 자리한 에스프레소 바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반짝이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뽑아내는 맛좋은 커피는 감동 그 자체였다. 또한 밀라노 사람들이 이런 에스프레소 바에서 모임을 많이갖는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슐츠는 에스프레소 바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스타벅스의 사장들에게 그 에스프레소 바를 어떻게 도입할까에 대한 생각을 설명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그러나 슐츠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1984년 시애틀의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판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듬해인 1985년, 슐츠는 첫 번째 에스프레소 바인 일 지오르날레를 열었다. 초기 자본은 투자자들과 스타벅스의 사장들이 제공했다. 스타벅스의 사장들은 일 지오르날레에서 오직 스타벅스 원두만 쓰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좋아했다.

    1985년 스타벅스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피트의 가게 5개를 사들였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좋지않았다. 커피 도매시장에는 이미 향 커피가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향이 가미된 가공커피는 당장 사람들을 끌어당기기에 좋았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그런 커피를 고집스럽게도 거부했다. 고급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한 지 15년째인 1987년, 사업은 빛을 잃었고 오너들은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시글은 1980년에 이미 회사를 떠났고 바우커는 레드 훅 에일맥주나 팔아볼까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사람이 구미가 당기는 조건으로 인수를 제의해왔다. 주인공은 다름아닌 '직원'이었던 하워드 슐츠였다. 당시 슐츠는 워싱턴, 밴쿠버, 시카고 등지에서 일 지오르날레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4백만 달러에 인수 계약은 체결됐고, 볼드윈은 스타벅스에서 소매를 담당하는 계열사의 사장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불과 하룻밤 사이에 모든 일 지오르날레는 훨씬 인지도가 높은 스타벅스로 명찰을 바꿔 달게 되었다.

    품격의 진정한 비밀, 바리스타

    슐츠의 목표는 미국 전역에 스타벅스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슐츠는 고품질을 책임질 수 있는사람을 찾아내고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너보다 똑똑한사람을 고용하고 그를 방해하지 말라." 그러나 방해하지 않으려면우선 다양한 커피를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만 했다.커피를 전문으로 끓이는 바리스타 (barista)가 되려면 24시간의 교실수업과 30시간 이상의 고된 현장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스타벅스는 주문 과정이, 주문과 만들기 그리고 찻잔 관리의 3단계로 분리되어 있어 퍽 효율적이다. 바리스타는 8개의 특성 목록에통달해야 한다. 8개의 특성은 종류, 양, 크기, 향과 맛, 횟수, 우유 종류, 거품의 끈기, 커피의 이름을 말한다. 손님 개인의 주문에는 항상세 명의 바리스타가 따른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과 우유에 거품을내는 사람, 그리고 계산을 하는 사람이다.

    이태리에 도전하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하나의 거대한 열풍이었다. 1987년 11개에 불과했던 매장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무려 850개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슐츠는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정보 및 경영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사업 확장을 관장하도록 했다. 1996년 스타벅스는 일본사람들
    역시 카푸치노와 카페 모카를 좋아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도쿄에 첫 해외 체인점을 열었다. 가장 위험한 계획은 유럽, 특히 이태리에다체인점을 여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20만 개의 에스프레소 바가 영업중이다.

    * 카푸치노의 유래 : 에스프레소 커피 위에 거품을 낸 우유나 크림을 타면, 카푸친 교파의 수녀가 입는 제복과 같은 색깔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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