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인쇄공 윌리엄 라운스와 문구점 주인 포신 힐은 힘을 모아 새로운 개념의 수첩을 팔아보기로 했다. 날짜와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섹션별로 나눠진 수첩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1921년 노먼 앤 힐 컴퍼니가 런던에 문을 열었다. 창립 초기인 1933년까지는 언론인이나 성직자, 변호사, 의사 등의 부유층이 주고객이었다. 휴대하기 편하고 표지도 송아지 가죽 재질이라 고급스러운 이정리 수첩은 바쁜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매년 수첩주인들은 지난 달력을 새 달력으로 갈 수 있었고 지난 달력은 영구적인 기록으로 보관할 수도 있었다.
2차 대전 중에는 군에서 필로팩스가 널리 애용됐다. 장교들은 이 수첩이 계획과 정보를 점검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필로팩스는 영국 군 간부 대학에 다니는 장교들의 필수 구매품이 되었으며, 라틴어로 '바데 메쿰(vade mecum)' 즉 “언제나 당신과 함께" 라는 뜻의 별명까지 얻었다. 또 군인들을 위해 특별한 부속물이 첨부되기도 했다. 필로팩스는 이를테면 '군 지휘관용 성서'였다.
*필로팩스는 워낙 두꺼워서 2차 대전 당시 총알을 막는 방패로 쓰이기도 했다.
비즈니스맨의 동반자
1959년, 데이비드 콜리션은 필로팩스를 구입한 뒤로 제품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왜아직까지 필로팩스를 더 넓은 국제 시장으로 내보내지 않았을까?"
1972년 콜리션은 노먼 앤 힐과 접촉하여 필로팩스의 미국 도매를맡기로 했다. 곧바로 그와 부인 레슬리는 포켓팩스라는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그로부터 8년 동안 DM 발송을 통해,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효과적으로 필로팩스를 알려냈다.
1980년, 콜리션은 당시 연 매출액이 22만5천 달러에 불과했던 노먼 앤 힐을 인수했다. 7년이 지나자, 새로운 회사는 연매출 2천7백만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1996년에는 그 액수가 5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토록 급격하게 판매가 늘어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일은 내 삶의 이유" 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30대 남성들 때문이다. 그들은 필로팩스에서 그들의 바쁜 삶을 정리해줄 완벽한 솔루션을 발견했다. 물론, 여성들 역시 핸드백과 서류 가방에 딱 들어맞는 이 수첩을 애용했다.
*영화배우 우디 앨런은 20개의 필로팩스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