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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엘버슨은 1968년 헤인즈의 스타킹 부서 회장으로 영입됐다. 팬티스타킹으로 유명한 의류업체 헤인즈는 탄력이 좋으면서도잘 늘어나지 않는 새로운 재료를 개발해냈다. 이 재료로 만든 샘플제품을 시험해보니 여성 10명 가운데 9명은 자기한테 맞다고 얘기했다. '한 사이즈로 모두를 커버한다. 이 아이디어는 마케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엘버슨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신제품은 어디로 밀어야 하나? 백화점이나 전문점 같은고가-소량판매 시장이냐, 아니면 수퍼마켓이나 연쇄점 같은 저가대량판매 시장이냐? 엘버슨은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엘버슨은 우선 경쟁 환경부터 검토했다. 조사를 해보니, 소비자는수없이 난립한 팬티스타킹 업체 가운데 그 어떤 브랜드도 제대로 기억하질 못하는 상태였다. 목표는 분명했다. 상점에서 헤인즈의 이름은 확실히 눈에 띄어야 한다!' 그러자면 대대적인 여론 공세가 필요했다. "페리터씨, 들어오세요."
레그스
내용과 포장이 하나로 느껴지게 하라
페리터가 일단 달걀 모양 포장으로 결정을 내리자, 페리터와 그의회사는 상품 포장과 내용물을 하나로 종합한다는 컨셉에 기초해서이름을 지었다. 달걀(egg) + 다리 (legs) =레그스(Leggs)! 너무나 대중적인 포장에다 이름도 귀여운 신제품, 거기에 수백만 달러를 걸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은 헤인즈에게 달려 있었다.
헤인즈 사는 특별히 고안된 진열대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진열대에는 각기 다른 컬러와 사이즈의 스타킹 24개를 진열할 수 있었고, 광고 문구와 각종 소비자 정보도 적혀 있었다. 모두들 소매업자들이 그 진열대를 받아만 준다면 다른 팬티스타킹보다 확실히 튈 거라고 생각했다. 위탁 판매로 할 경우, 소매업자에게는 레그스의 운송에 따른 위험 부담도 없었다. 헤인즈는 상품과 진열대를 가지고매장에서 자리를 빌리게 되는 것이었다.
1970년 3월, 레그스는 네곳에서 시범적으로 판매됐다. 놀랍게도단 42일 만에 예상했던 것보다 1천5백%가 넘게 팔려나갔다. 여섯달뒤, 헤인즈는 다른 지역에서 추가로 시험해보지도 않고 아주 자신있게 전국 시판에 돌입했다. 다시 6개월이 흐른 뒤, 대도시의 여성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25%가 정기적으로 레그스를 구입한다고 대답했다. 첫해의 판매 수입은 9백만 달러에 달했고 이듬해에는 5천4백만 달러로 증가했다. 3년 뒤에는 레그스를 팔아서 1억 1천2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헤인즈의 광고는, 직설적이고 기억하기도 쉬운 맺음말이 압권이었다. "Our Leggs fit your legs (저희 레그스는 당신의 다리에 꼭 맞습니다)."헤인즈는 레그스를 시판하기 전에는 매년 25만 달러를 광고비로 썼다. 하지만 레그스를 내놓으면서 광고비 지출은 1천만 달러로 올라갔고 1980년에는 3천만 달러로 올라갔다. 독특한 마케팅 전략도 성공적이었지만, 고객들이 사이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만든 것도 중요했다. 여성들은 진열대에 걸린 읽기 쉬운 도표를 보면서 맞는 사이즈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